피아노 선율이 잇는 시공간: 베이징의 눈물부터 캘리포니아의 환희까지
턱 선에 닿을 듯 말 듯 짧은 단발머리를 한 중년 여성이 무대 중앙 피아노 앞에 다가섰다. 짙은 갈색 블라우스는 어딘지 모르게 승복을 연상시켰고, 건반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가락은 쫙 펼쳐도 한 옥타브를 겨우 넘길 만큼 짧은 편이었다. 무대 위 조명은 피아노와 그녀만을 소박하게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객석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고위 지도층부터 덩샤오핑의 딸을 비롯한 이른바 ‘홍색 귀족’, 기업인, 지식인, 예술가, 그리고 젊은 세대까지. 약 1,100명의 인파가 그녀의 연주를 보기 위해 베이징 음악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녀가 피아노 위로 손을 올리는 순간, 장내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유년기와 청춘을 보낸 고향 베이징을 떠난 지 무려 34년. 피아니스트 주샤오메이는 단독 연주회를 위해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왔다. 2014년 11월 홍콩에서 시작되어 지난과 상하이를 거친 그녀의 첫 중국 순회공연은 어느덧 베이징에서 후반부의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픔의 역사를 위로하는 바흐의 선율
공연의 핵심 레퍼토리였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가 모두 끝났을 때 주샤오메이는 기력을 완전히 소진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쏟아지는 기립박수에 그녀는 여느 클래식 음악가들처럼 무대를 들고 나기를 반복하며 앙코르곡으로 화답했다. 무수한 꽃다발이 품에 안겨졌지만 관객들의 벅찬 환호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몇 번의 퇴장과 입장을 반복한 끝에 결국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은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내주신 따뜻한 환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박수는 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제가 평생을 기대어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바흐의 위대한 걸작에 쏟아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담담히 이어지는 그녀의 고백은 50년 전 과거의 한순간으로 향했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치기 전, 그녀가 베이징 음악청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무대는 다름 아닌 선배 피아니스트 구셩잉의 독주회였다. 주샤오메이는 당시 50년 전 구셩잉이 연주했던 쇼팽의 스케르초 4번의 선율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958년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21세의 나이로 2위에 입상한 구셩잉은 과장 없는 순수한 열정으로 어린 소녀에게 예술가의 꿈을 심어주었다. 바로 전년도에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던 그 권위 있는 콩쿠르였다. “선배들에게는 그 길의 끝까지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명맥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구셩잉과 주샤오메이, 그리고 수많은 중국인이 시대 속에서 견뎌내야 했던 비극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밀려오는 감동 속에서도 차마 환하게 웃음 짓지 못했다.
바다 건너 캘리포니아, 삶을 긍정하는 새로운 무대
과거의 상처를 보듬는 애절한 피아노 선율이 아시아 대륙을 적셨다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삶의 환희를 노래하는 또 다른 피아노 무대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저명한 피아니스트 존 나카마츠(Jon Nakamatsu)가 다음 주말 퍼시픽 챔버 오케스트라(PCO)와 생애 첫 협연을 펼칠 예정이다.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베이 에어리어와 뱅크헤드 극장 등에서 숱한 독주회를 가져온 지역의 자랑이다. 이번 라파예트와 리버모어 공연에서 그는 미국 작곡가 에드워드 맥다월과 러시아의 거장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명곡들을 들려준다. 나카마츠는 “맥다월의 음악은 지극히 미국적이면서도 진심이 담겨있고 무척 낙관적”이라며, “이처럼 넓은 포용력과 활기를 지닌 ‘피아노 협주곡 2번’을 PCO와 함께 고향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되어 매우 설렌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낭만적 서사와 지역 사회의 축제
공연의 피날레는 압도적인 선율과 웅장한 힘을 자랑하는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이 장식하며 영웅적인 서사의 정점을 찍는다. PCO의 음악 감독 로렌스 콜은 “맥다월과 차이콥스키의 작품은 삶을 강력하게 긍정한다는 점에서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한 곡이 서정적이고 쾌활한 생명력을 뿜어낸다면, 다른 한 곡은 영혼 밑바닥에서부터 맹렬하게 타오른다는 것이다. 두 거장의 작품이 빚어내는 찬란한 낭만의 멜로디는 4월 25일 오후 3시 라파예트-오린다 장로교회와 26일 오후 3시 리버모어 뱅크헤드 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극장 안을 가득 채운 감동의 여운은 지역 축제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연주회 다음 주인 5월 2일 오후 4시 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뱅크헤드 플라자에서는 PCO가 주최하는 제3회 ‘트라이밸리 크래프트 칵테일 대회’가 열린다. 현지 믹솔로지스트들의 독창적인 칵테일과 지역 레스토랑의 소형 안주 페어링이 어우러지는 이 행사는, 예술 단체와 지역 사회가 어떻게 교감하고 연대하는지를 보여주는 PCO의 대표적인 연중 모금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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